금값이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는 뉴스를 보면서 "금리 인하 때문이겠지"라고 생각했던 분들이 많을 겁니다. 저도 처음엔 그랬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금 시장을 들여다보니, 표면적인 이유 뒤에 훨씬 더 구조적이고 심각한 변화들이 숨어 있더군요. 연준의 금리 정책이나 지정학적 불안 같은 건 사실 빙산의 일각에 불과합니다. 정작 중요한 건 금이라는 자산 자체가 가진 물리적 한계와, 그걸 둘러싼 국가 간 힘겨루기였습니다.

채굴 한계
금은 무한정 캘 수 있는 자원이 아닙니다. 인류가 지금까지 채굴한 금이 약 20만 톤으로 추정되는데, 채굴 가능한 잔여량이 5만 톤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고 합니다. 한 해 채굴량이 3천 톤 수준이니, 앞으로 십 수 년 지나면 사실상 고갈된다는 얘기입니다. 지구상 금의 99%는 지각이 아닌 내핵과 외핵에 있어서 현재 기술로는 접근조차 불가능하고, 지각 내 채굴 가능한 금 중 80%는 이미 파냈습니다. 2025년경 채굴량이 정점을 찍고 이후 줄어들 거란 전망도 나옵니다.
흥미로운 건 금 시장이 일반적인 수요-공급 법칙과 다르게 움직인다는 점입니다. 1950년대 이후 채굴 기술이 발달하면서 금의 총량이 급격히 늘었는데도 가격은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대부분의 금 보유 주체들이 금을 '안전자산'으로 쥐고만 있기 때문입니다. 귀금속으로 만들어진 금은 개인 컬렉션으로 보관되고, 중앙은행들도 금 보유량을 늘리는 추세입니다. 미국만 금본위제 폐지 이후 보유량을 줄였을 뿐, 다른 나라들은 계속 쌓아두고 있습니다. 이런 '키핑' 성향 때문에 시장에 유통되는 금의 양이 극도로 제한적입니다. 공급이 늘어도 유통량은 그대로니 가격이 안 떨어지는 겁니다. 저는 이걸 '얕은 시장'이라는 표현으로 처음 접했을 때 무릎을 쳤습니다. 공급 증가가 가격 안정으로 이어지지 않는 독특한 구조였던 거죠.
여기에 금의 재화적 특성도 무시 못 합니다. 금은 땅속에서 채굴되고 순도 높은 금괴로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채굴, 발굴, 탐사, 운송 비용이 듭니다. 인플레이션 구간에서는 이런 제조 및 유통 비용이 올라가면서 금 가격에 직접 영향을 줍니다. 금 1g당 비용 비중이 약 5% 수준이지만, 인건비, 원자재값, 유류비 등 전반적인 상승은 변동성이 크지 않은 금 시세에 그대로 반영됩니다. 금은 전자제품, 의약품 등 산업 전반에도 쓰입니다. 인류가 캔 금의 50% 이상은 귀금속으로, 21%는 중앙은행 준비 자산으로, 15%는 산업용으로 쓰인다고 하니 수요처도 다양합니다.
브릭스 매집
중국, 인도를 중심으로 한 브릭스 국가들이 금을 미친듯이 사들이고 있습니다. 이게 금값 급등의 숨은 핵심입니다. 브릭스는 달러 의존도를 낮추고 자체 화폐 결제 시스템을 구축하려고 하는데, 이걸 뒷받침할 '금'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브릭스페이, 브릭스 유닛 같은 새 금융 체계를 만들려면 결국 신뢰할 수 있는 담보가 필요한데, 그게 바로 금이라는 겁니다. 미국에 비해 금 보유량이 현저히 적은 브릭스 국가들은 계속해서 금을 사들일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브릭스는 자기들만의 IMF 역할을 할 '새개발은행(NDB)'도 세웠는데, 아직 금을 보유하고 있지 않습니다. NDB가 국제적 위상을 갖추려면 IMF처럼 금을 쌓아야 하니, 앞으로 금을 저장해야 할 주체가 더 늘어난다는 얘기입니다. 수요는 계속 증가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좀 놀랐습니다. 브릭스가 단순히 경제 협력체가 아니라 새로운 금융 질서를 만들려는 야심을 가진 집단이었다는 걸 뒤늦게 알았거든요. 그러니 금값이 오를 수밖에 없는 구조적 압력이 이미 형성되어 있는 겁니다.
전 세계 많은 국가들이 GDP 대비 국가 부채 100%를 넘었습니다. 미국 재무부도 채권 발행을 늘릴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이는 유동성 공급 증가로 이어지고, 달러 가치를 약화시킵니다. 상대적으로 금의 가치는 올라갑니다. 국가 부채가 늘면 위정자들은 디플레이션을 극도로 두려워합니다. 디플레이션은 화폐 가치를 높여 빚 갚기가 더 어려워지니까요. 그래서 많은 국가들이 오히려 인플레이션을 유도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트럼프의 금리 인하 요구도 이런 맥락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인플레이션 시기에는 금의 가치가 상승하니, 국가 재정 상황 자체가 금값을 밀어올리는 요인이 됩니다.
디지털 리스크
비트코인 같은 '디지털 금'이 뜬다고들 하지만, 저는 여전히 물리적 실체를 가진 금이 더 믿음직스럽습니다. 실체 없는 코인을 살 것인가, 실체 있는 금을 살 것인가? 저는 무조건 금입니다. 해킹 위험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자산은 물리적 형태를 가진 것뿐이거든요. 우리 자산 대부분이 디지털화되면서 해킹, 금융 대란 등으로부터 안전한 물리적 자산에 대한 수요가 커지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밀도가 높고 저장이 용이한 금이 각광받는 겁니다. 미 국채마저 이제 종이로 발행되지 않고 디지털화되면서 해킹 위협에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중국처럼 국가 권력이 강한 곳에서는 정부의 금융 통제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게 자산을 보유하고 싶어하는 욕구도 금 수요 증가의 한 원인입니다. 정부가 모르는 자산으로서 금의 가치가 재평가되고 있는 겁니다. 디지털의 역습이라고 해야 할까요? 아무리 인터넷이 판을 쳐도 아날로그 책의 감성을 없앨 수 없듯이, 사람은 기계가 아니라는 점을 잊으면 안 됩니다. 인간에게 최소 5천 년간 빛나는 돌덩이가 가치를 가졌던 이유를 유념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금은 상품입니다. 화폐의 기본 원리를 갖추고, 미량으로 거대한 부를 운반할 수 있는 편의성까지 있습니다. 결국 어려운 상황에는 마지막까지 가치를 잃지 않는 가장 믿을 만한 상품일 겁니다. 믿을 만한 투자처가 하나도 없어진다면 금융가들은 모두 금만 사려고 할 테니까요. 저는 개인적으로 자산 포트폴리오의 다양화 관점에서 금을 선택하는 게 현명하다고 봅니다. 부동산은 가격이 비싸지만, 금은 상대적으로 접근성이 높고 디지털 해킹 등의 위협으로부터 안전한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금 보유량이 가장 적은 편입니다. 약 100톤 정도를 보유하고 있는데, 이는 외화 보유액의 3%도 안 됩니다. 한국은행은 금 대신 미국채 같은 이자 붙는 자산을 선호하지만, 미국채 가치에 대한 의구심과 법정 화폐 가치 하락 추세를 고려하면 금 보유량에 대한 재고가 필요해 보입니다. 개인 투자자 역시 이런 흐름에 대비해야 합니다. 많은 국가가 고령화 등으로 인플레이션 시대를 피하기 어려워 보이니, 개인도 실물 자산 보유를 통해 자구적으로 대비할 필요가 있습니다. 금값 급등은 단순히 투자 기회가 아니라, 달러와 금융 불안의 거울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셨으면 합니다.